인종차별. 약 3년 9개월의 해외 생활을 하면서 인종차별을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문제다. 직간접적으로 인종차별을 당한 경우야 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일화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필자가 처음 직접적으로 인종차별을 당한 건 뉴질랜드 생활 초기에 블레넘에서 산책중이었는데 자전거 타고 가던 미친 X이 뭐라고 소리 지르고 간 적이 있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에 안나지만 좋지 않은 소리였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가장 최악의 경우였던 두번째 일화는 일했던 펍/카페에서 초반에 몇몇 직원들에게 장난스레 '스시'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솔직히 처음엔 기분이 나빴지만 굳이..라는 생각에 웃어넘겼다. 그런데 몇 번에 걸쳐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같이 동참했던 매니저에게 정색하고 '그거 정말 인종차별적인 말인 거 알지? 기분 나쁘니까 그만해.'라고 말했다. 그때서야 매니저가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상처 주려는 건 아니었다며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종식되었다. 이제야 겨우 좋은 일자리를 찾았는데 굳이 정색하고 말하기 무섭기도 했고 그때는 영어실력이 더욱 형편없을 때라 '내가 이걸 잘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주저했지만 그들의 악의 없이 한 말에 내가 상처 받는 걸 알려주는 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또 한번은 작년에 한창 어떤 발음을 연습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같이 일하던 키위인 동료가 '한국인인 Z는 잘 발음하던데 넌 왜 못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는 발음 연습을 도와주면서 별 의미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 남자 친구인 J군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건 네가 인종차별을 당했기 때문에 그래.'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게 어떻게 인종차별이지?'라는 생각이 처음엔 들었는데 J군의 설명을 듣자 이해가 되었다. J군 설명에 따르면 그 친구는 '한국인은 모두 Z 같다.'라는 인종차별적인 인식 아래 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자기가 아는 유일한 한국인인 Z를 만난 후 다른 한국인들이 존재한다, 혹은 한국인의 다양성을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가 가진 유일한 기준으로 날 판단했기 때문에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은 수많은 형태로 차별을 하는 사람도 의식하지 못한채 행해지고 있고, 차별을 당한 사람도 이게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채 상처 받는 일이 무분별하게 일어난다는 걸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인종차별을 행하는 무지한 사람들을 지적하고 그들이 한 말, 행동이 왜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또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인종차별을 하는 일이 없게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인종차별에 대해 적어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이다. 최근 서구권에 거주하고 많은 동양인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고, 그로 인해 사망자가 있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필자는 사실 뉴질랜드에 거주하면서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길가다 칼을 맞거나, 신체적인 폭행을 당할 수도 있구나.'라는 걱정을 해본 적도 겁을 먹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한인이 길가다가 칼에 맞았다는 기사를 읽은 후,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한 뉴질랜드에서 밖에 혼자 나가기가 무서워졌다.
기사를 읽은 다음날 미리 예약해둔 차를 수리하러 시내에 나가야 했는데 취소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같이 일하는 키위 친구들한테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이런 일이 있다더라, 나 사실 나가기 무섭다.'라고 말하니 '여기는 그런 일없다.'며 날 안심시키는 친구들이 고마웠지만, 큰 안심이 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느껴본 적 없는 공포일테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다음날 겁먹은 채로 시내에 나갔고 시내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나에게 친절했다. 나의 걱정은 쓸데없는 걸로 판명 났지만, 그래도 시기가 시기다 보니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마스크를 구할 수도 없었지만, 구할지언정 절대 쓰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마스크를 쓰면 모두가 겁먹은 눈으로 날 바라볼게 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짜 길가다 공격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뉴질랜드는 북섬보다 남섬이 인종차별이 심하기 때문에 북섬에 다양한 인종들이 거주하는 반면 남섬에는 압도적인 비율로 유럽계 뉴질랜드 사람들이 많다. 북섬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마오리 문화유산들을 볼 수 있고 길거리에 마오리어로 적힌 표지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하다 못해 작년 3월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도 '크라이스트처치'이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뉴질랜드 남섬=인종차별이 심함'은 어느 정도 공공연하다.
그렇지만 필자는 3년전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한 1주일 동안 오클랜드에서 지낸 걸 제외하고는 남섬에서 거주하고 있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신체적인 공격을 당한다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한 적은 없다. (아직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없길 바란다.)
그렇기에 혹시 뉴질랜드로 여행이나 워킹홀리데이,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 중에 이 글을 읽고 괜히 겁먹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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