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8일, 오클랜드 국제공항으로 입국하여 현재까지 총 4번의 비자를 받았습니다.
첫 비자는 2016년 5월에 신청했던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였는데, 선착순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서버가 다운돼서 페이지가 넘어가고 결제를 하기까지 약 2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일하던 사무실에서 도전하였으니 그리 속도가 빠른 컴퓨터는 아니었음에도 운이 좋게도 워홀 비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역시 호주처럼 흉부 엑스레이가 필수입니다.
두 나라 모두 결핵에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결핵에 걸린 기록이 있거나 걸렸다면 비자가 거절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저는 비자를 받자마자 빠르게 지정병원 중 신촌 세브란스에 흉부 엑스레이 검사를 예약했습니다. 병원도 이민성에서 지정해주는 곳만 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목록을 확인해서 가까운 병원으로 가면 됩니다.
벌써 3년이 지난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비자를 받고 1년 이내에 출국을 하면 뉴질랜드 입국 날짜를 기준으로 1년간 체류가 가능하며, 농업 관련직에 3개월 이상 종사하면 비자를 3개월 연장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반드시 이민성에 이중확인 바랍니다. 확실하지 않아요!)
도착지를 오클랜드로 한 이유는, 일단 비행기 값이 가장 저렴했고 또 IRD(세금 번호) 발급, 은행 계좌 개설 등 뉴질랜드 생활을 위한 행정적인 업무를 위해서는 대도시가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있다면 다른 워홀러들과 어울리면서 정보를 얻기 좋기도 합니다. 일단 저는 비행기표를 끊은 후 오클랜드 YHA에 일주일 동안 예약을 했습니다.
뉴질랜드에는 여러 은행이 있지만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은행 계좌를 할 수 있는 곳은 ANZ 뿐이었기에 (당시 저의 정보력에 의하면) 호스텔 주변에 있는 ANZ에 찾아가 계좌를 개설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 당시 50불 정도의 현금을 계좌 개설과 동시에 입금해야 해서 가지고 있는 미국 달러를 환전해야 했었습니다. 저 또한 많은 블로거분들의 도움으로 은행 계좌 개설을 하고 IRD 발급을 하였기에 네이버나 다음에 검색하면 무궁무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자세한 방법은 건너뛰겠습니다.
처음부터 뉴질랜드에 머물 목적으로 오진 않았기에 영주권이나 이민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좋지만 굳이 목매고 싶지는 않은 느낌이었달까.
호주 워홀 생활과 유럽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니 한국생활에 만족도가 낮았고, 가치관도 1년 사이 많이 변해있었기에 '미래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세우기 전에 한번 더 해외에 나가보자'라는 마음으로 뉴질랜드에 왔습니다.
이번엔 유럽여행 같은 큰 목표는 없었기에 돈보다는 경험과 여행에 초점을 두었고, 호주에서는 시드니에서만 10개월 지냈기에 '큰 도시에서는 지내지 말자'라는 두리뭉실한 생각만 가지고 오클랜드에 도착했습니다.
무엇보다 시드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한창 클 때여서 오클랜드가 썩 좋아 보이지도 않았고 길거리에 널려있는 한인 음식점들을 보며 여기 있으면 시드니와 똑같은 생활만 하다 가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시드니 생활이 나빴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특정 산업군(와이너리, 농업 등 일손이 부족한 직군)에 3개월 종사하면 3개월 연장한다는 게 저에게는 썩 매력적이지 않아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클랜드에 일주일 머무는 동안에도 뭘 해야겠다는 선명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아서 일자리가 많다는 남섬, 블레넘(Blenheim)으로 향했습니다.
오클랜드에서 웰링턴까지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내려가서 다시 페리를 타고 남섬의 최북단인 픽턴(Picton)으로, 픽턴에서 20분간 버스를 타고 블레넘으로 기나긴 여정을 따라 도착했습니다.
어떻게 찾았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워킹 호스텔에서 3주간 머물렀습니다. 6인실에 지내며 와이너리 일이 있을 땐 일을 갔다가 아닌 날에 숙소 친구들과 술 마시는 생활을 하다가 문뜩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상황에 이르렀고, 호스텔을 나와 플랫으로 들어간 곳에서 한국인 언니와 함께 삼주 정도를 지냈습니다.
정말이지, 인생에서 손꼽을 정도로 암담했고 철저히 외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와이너리 일은 하나도 재밌지 않고 성격에도 맞지 않았으며, 그다음에 얻은 공장일 또한 지루함의 끝이었습니다. 홍합 공장과 젤리형 과자를 포장하는 공장일을 했었는데 단순 반복의 끝이며 일하는 내내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단순 반복되는 일을 하는 동안 정신은 피폐해져만 갔고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는 느낌에 지쳐만 갔습니다.
만약 돈을 모아야 하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면 그때의 경험을 다르게 받아들였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 시절의 저에게는 다른 시각으로 상황을 볼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물론, 적어도 공장, 농장일은 나의 정신상태를 위해 피하고, 돈을 적게 벌어도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갈까'라는 마음까지 들었을 때, 그래도 스스로에게, 뉴질랜드에게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자 하는 마음으로 도망치듯 시작한 곳에서 운이 좋게 자리 잡아 여태 살고 있습니다.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걸 몸소 경험하고 나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고, 주춤했던 추진력도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뉴질랜드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블레넘이 저에게는 최악의 장소가 되었듯이 사람마다 경험하는 게 다르다는 걸 염두하고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진은 본인이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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